리투아니아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 [성모성지순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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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화발전소 성모성지순례(2)
리투아니아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
"자비의 예수님 성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성녀에 대하여-
(예수님과 깊은 일치를 이뤘던 삶을 살았던 성녀)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
[리투아니아 빌뉴스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26.06.16)]
이곳은 하느님 자비의 사도(Apostle of Divine Mercy)라고 불리우는 '자비의 성모회' 소속 '파우스티나 성녀'(St. Faustina)의 '자비의 예수님 성지'(Sanctuary of Divine Mercy)로, 성녀께서 1929년, 1933년~1936년 동안 머물렀던 곳입니다. 이 곳은 과거 빌뉴스 수녀원으로 겨우 18명의 수녀만이 있었으며, 현재도 작고 초라한 건물 몇 채가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명령으로 만들어 낸 첫 번째 성화가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자비의 예수님 성지'입니다.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Mary Faustina Kowalska)
성녀 코발스카는
1905년 8월 25일 폴란드 우지의 서쪽에 있는 글로고비에츠(Glogowiec)라는 마을에서 농부인 에스타니슬라오 코발스카와 마리아나 사이에서 10명의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스비니체 바르키에 본당에서 헬레나(Helena)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가난하고 배운 것은 없었지만 신심이 깊고 올곧은 사람들로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순명, 부지런함에서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였습니다. 9세 때 첫 영성체를 한 후 어려운 가정환경 등으로 3년 정도 교육을 받은 후, 12세 때 고향을 떠나 부유한 집에서 가정부 일을 하며 동생들과 부모님의 생계를 도왔습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수도성소를 느꼈고, 더 이상 학교 수업을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수녀원 입회를 원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일단 성소를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한 후 1925년 8월 1일 자비의 성모 수녀회에 입회하였습니다. 그리고 1928년 마리아 파우스티나(Maria Faustina)라는 수도명으로 첫 서약을 하였습니다. 그 후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는 수도원의 여러 공동체에서 조리사, 정원사, 문지기 등의 소임을 담당하면서 수녀회의 모든 규칙을 성실히 지키고 동료들과 따뜻한 우애를 나누었습니다. 그녀의 일상적인 삶은 단조롭고 두드러진 특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이룬 삶이었습니다. 성 파우스티나 수녀는 많은 환시와 예언, 그 외에 영적 은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조롱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성녀의 3가지 사명은
첫째, 모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대해 성서가 전하는 신앙의 진리를 세상에 일깨워 주어야 한다.
둘째, 특히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느님의 자비' 신심 실천을 통해, 온 세상과 특히 죄인들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해야 한다.
셋째, 하느님 자비의 사도직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신심 운동의 목표는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자비를 선호하고 간청하며, 그리스도교의 완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하신 말씀을 기록한 일기 "내 영혼속 하느님의 자비" 「Divine Mercy in My Soul」-
-하느님 자비 환시 체험-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 자비의 예수님이 나타나신 방 / 복음화발전소 성지순례단 방문(25.06.16)]
1931년 2월 22일 예수님께서 피우스티나 성녀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자신을 '하느님 자비의 임금'이라고 소개한 후 예수님께서는 흰옷을 입고 있었고, 한 손으로 심장 근처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을 내밀어 축복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심장 근처에서 붉은색과 흰색 두 갈래 빛이 퍼져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서 이웃에게 자비를 전하는 모범, 그리고 온 세상을 위한 하느님 자비를 강조하는 도구가 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1935년 4월 19일 성 금요일 날에, 파우스티나는 또 한 번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하였습니다.
이번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상본을 공적으로 기념해 줄 것을 그녀에게 요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35년 4월 28일예수부활 대축일 후, 두 번째 주일에 파우스티나 수녀의 지도 신부였던 '소포코' 신부는 교구장인 '잘브레이지코프스키' 대주교로부터 정식으로 허락을 받아 하느님의 자비 상본을 들고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자비의 예수님 성화-
['최초로 그려진 자비의 예수님 성화' 복음화발전소 성지순례단 방문(25.06.16)]
1931년 2월 22일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며 본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던 파우스티나 수녀는 자신이 본 그리스도의 모습을 어떻게 상본으로 새겨야 할지를 몰라서 동료 수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허사였습니다. 하느님 자비의 상본은 3년 후 이곳에 소임을 받아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자비의 성모회)에 새로 임명된 고해사제인 미카엘 소포코 신부를 만나면서 그의 도움을 받아 처음 그려졌습니다.
['성 파우스티나'와 복자 '미카엘 소포코' 유해가 보관되어있는 성녀의 방(25.06.16)]
미카엘 소포코 신부와의 첫 고해성사에서 파우스티나는 자신이 일전에 체험하였던 그리스도의 환시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얼마 후 1933년 가을, 소포코 신부는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정신과 의사이자 내과 의사인 헬레나 마조쥬카 박사로부터 진찰을 한 번 받아볼 것을 강력하게 권유하였습니다. 검사 결과 파우스티나 수녀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후 소포코 신부는 파우스티나 수녀를 전적으로 신뢰하였으며, 그녀를 아낌없이 지지하고 도와주었습니다.
소포코 신부는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앞으로 일기를 꼬박꼬박 쓰고 환시를 통해 그리스도와 나누었던 대화와 메시지를 일지장에 기록할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소포코 신부에게 하느님의 자비 상본에 대해 말해주었으며, 이에 소포코 신부는 1934년 1월 자신의 친구이자 예술가이자 대학 교수이기도 한 '에우제니오 카즈미에로스키'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1934년 6월 카즈미에로스키는 파우스티나 수녀의 진술을 토대 삼아 '하느님의 자비 상본'을 완성하였습니다.
파우스티나가 선종한 이후,
여러 화가들이 앞다투어 하느님의 자비 상본을 그렸는데,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아돌프 힐라가 그린 '하느님의 자비 상본'입니다.
빌뉴스에 있는 동안 파우스티나는 자신이 받은 메시지가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라고 희망하였습니다.
폐결핵을 비롯한 수 많은 고통들을, 죄인을 위한 희생으로 받아들이던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는 크라쿠프(Krakow)에서 1938년 10월 5일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녀의 시신은 크라쿠프 라기에브니끼의 '하느님의 자비 묘지'(Shrin of Divine Mercy)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녀는 1993년 4월 1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nnes PaulusⅡ)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4월 30일 새천년기에 처음으로 시성되었습니다.
-성화의 역사-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 안에 있는 성물방에서 판매하고 있는 '자비의 예수님 상본'(25.06.16)]
1951년 두 여성이 이미지를 보관하고 있던 '성 미카엘 성당'에 대금을 지불하고 성화를 다시 찾았고 이 성화는 폴란드로 국경을 넘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들 두 여성은 성화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조건으로 '성령성당'(Church of Holy Sprit)-[러시아 정교회 성당]의 사제에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5년 후인 1956년 이 성화는 벨라루스에 있는 어느 성당으로 이동되었고, 그곳에서 30년 넘게 보관되었습니다. 1970년 이 성당 역시 정부에서 봉쇄시켰고 약탈했지만, 기적적으로 '자비의 예수님 성화'는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 보관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성화는 비밀리에 리투아니아로 되돌아왔으며 다시 '성령성당'에 보내졌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이 성화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게 되었으며, 전문적인 복원작업을 거친 후에 2005년 '성삼위성당'(Church of the Holy Trinlty) 가까운 곳, 지금의 '하느님 자비성지'(Shrin of Divine Mercy)에 걸게 되었습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2019.04.18 (CNA) 기사에서 발췌-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
[복음화발전소 순례단 빌뉴스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 방문(25.06.16)]
들어가는 입구에
안내문이 있습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 앞에 있는 안내문(25.06.16)]
"성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신성한 자비의 사도
그리고 자비의 성모 수녀회
1929년, 1933~1936년 동안
이 집에서 살았다."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성물방을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니
[파우스티나 성녀가 '자비의 예수님 상본을 만든 과정이 적혀진 방'(25.06.16)]
PERDUOTI DIEVO ZINIA"하느님의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라고 적혀진,
파우스티나 성녀의
예수님의 현시와 상본을 만든 과정이
적혀진 방입니다.
마치
작은 박물관을 보는 듯 합니다.
그 골목을 지나~
아름다운 그림들이 걸려있는 벽면을 지나서
수녀님이 생활했던 방이
나옵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25.06.16)]
아주 소박하고 정갈합니다.
당시에 파우스티나 수녀는
이곳에서 많은 노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바로 이곳이
자비의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방입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 '자비의 예수님이 나타나신 방'(25.06.16)]
『당시 파우스티나가 기록한
"내 영혼 속 하느님의 자비"
(1931.02.22)내용 중』
"그날 저녁, 내 방에 있는데,
예수님께서 흰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손을 펼쳐 축복하고 계셨고,
다른 한 손을 가슴 쪽의 옷 부분을
잡고 있었다.
가슴쪽에는
두 개의 커다란 빛이 나왔는데,
하나는 붉은색이고,
다른 하나는 흰색이었다.
침묵 속에 주님을 바라보니,
내 영혼은 두려웠지만
기쁨으로 가득했다."
이 역사적인 장소에 와 있는 것이
정말 꿈만 같습니다!
바로 옆방에는
성녀가 생활하셨던 방으로
성녀의 유해와 복자 미카엘 소포코
유해가 모져져 있습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 '성녀의 유해가 있는 방'(25.06.16)]
전 세계에서 온 많은 순례객들로
가장 많이 붐볐던 방이었습니다.
['성 파우스티나와 복자 미카엘 소포코의 유해'(25.06.16)]
성녀의 유해가 있는 곳은,
성녀가 생활했던 방으로
침대가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복음화발전소 순례단은
각각 자유롭게 순례하던 중
신비한 주님의 이끄심으로,
정확히 3시에
성녀의 유해 앞에서 '자비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 '복음화발전소 순례단 자비의 기도 바침'(25.06.16)]
"영원하신 아버지,
저희가 지은 죄와 온 세상을
보속하는 마음으로
사랑하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을 바치나이다.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복음화발전소 2025년 성지순례' 리투아니아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25.06.16)]
"나는 자비의 축일이 모든 영혼들,
특히 불쌍한 영혼들의 피난처와
안식처가 되기를 원한다.
그날 내 부드러운 자비의 깊은 속이
열릴 것이다.
내 자비의 근원으로 찾아오는
영혼들에게 은총을 바다처럼
쏟아부어 주겠다. (..)
어떤 영혼도 내게 오기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 주어라. (..)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전부 다
나의 지극한 자비의 깊은 곳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
자비의 축일이 부활 후 첫 주일에
성대하게 거행되기를 바란다.
내 자비의 샘을 향하여 돌아설 때까지
인류는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의 일기, 699항-
평생의 삶을 주님과 깊은 일치의 삶을 사신 파우스티나 성녀를 묵상하며, '자비의 기도'가 얼마나 의미있고 중요한 기도였는지, 죄인들의 회개와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로서 매일 3시 꼭 바쳐야 함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자비의 기도를 할 때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하면서 매일 꼭 기도해야 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복음화 발전소에서는 매일 3시, 병환 중에 있는 회원들을 위해, 고통중에 있는 회원들을 위해 '자비의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성모발현지를 찾아서]
2편(리투아니아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을 마칩니다.
★다음 3편(빌뉴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성당')을 기대해주세요.
♡숨은 이야기와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복음화발전소 카페에서 확인하세요
☞https://cafe.naver.com/epskr/3554
[유튜브 치우치유TV "파우스티나 성녀의 집"]
☞https://youtu.be/deI2yiKfGso?si=rgTB5u5po465yXRq
▶우리 복음화발전소는 이사장님이 선두에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그를 따르는 봉사자들이 묵상말씀으로, 유튜브로, 블로그로, 카페로, 다시 그 말씀을 재선포하고 있습니다. 발전소의 회원들 또한 그 말씀을 전달함으로써 직접적인 복음선포는 물론, 양보하고 내어주는 삶을 실천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삶을 통한 복음 선포'에 앞장서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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